Der Randomgeist

혼잣말


퇴근이다.

퇴근하자마자 나는 내가 먹을 저녁을 직접 만들었고 (참치샐러드),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청소했으며 오늘 저녁내로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정신이 없다.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계란을 삶고 있는 동안 이 글을 쓴다. 계란이 삶아지면 불을 끄고 빨래를 하러 지하실로 내려가야한다.

밖에는 비가 온다.

밖에서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자 갑자기 어렸을때의 어떤 날이 기억났다. 장마철이었고, 나는 할머니집에서 살고 있었다. 형은 그 날 수학여행을 가 있었으므로 6학년이었을테고, 나는 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을테니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비가 오자 엄마는 형 걱정을 하셨고, 나도 그 걱정에 전염되서 줄곧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테레비젼에서는 스타워즈를 방영해주고 있었다 (제다이의 귀환편이었던거 같다, 빨간 라이트세이버를 든 다스베이더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때 장마에 철철 넘치던 아파트 주차장이 보일것 같다. 이런 정신의 착각현상들을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에 싸구려 기숙사의 8평방미터짜리 방에서 살때, 눈을 감고 기숙사학교시절 방을 떠올리곤 했다. 눈을 뜨고 커텐을 열면 밤기운에 충만한 대성당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오고, 나는 그 조용하고도 경건한 장면을 배경삼아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하나 물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눈을 뜨기 직전까지 나는 그 환상을 믿는다. 옆방에는 베른하르트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수 있으며, 눈을 뜨면 천장에 박아놓은 신디 크러포드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물론 눈을 뜨면 좁고 어둡고 냄새나는 기숙사방이 있을 뿐이다.

같은 종류의 환상을 나는 독일에 처음왔을때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곤 했다. 처음 몇주간 나는 아침에 잠이 깨면 일부러 눈을 뜨지 않는 습관을 들였었는데, 그러고 있으면 눈을 떴을때 다시 한국이고 이 끔찍한 소위  "조기 유학" 은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다고 믿었으며 희망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눈을 떴을때는 마찬가지로 나는 4인용 기숙사의 2층침대에 누워있었으며, 북적거리는 아침 샤워실, 식당까지 멀고 추운 대리석길, 한마디도 못알아듣는 독일어수업..과 같은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꿈을 꾼다는 것 - 현실을 상상력의 힘으로 밀어내고 눈을 감는다는 것은 꿈꾸는 이에게는 순간적으로 극도로 아름다운 일임에 동시에, 그의 절망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비가 그쳤다. 비가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2008/06/04 20:30 2008/06/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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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pamax and weight. from Topamax when will it help my binging.-

    Topamax taste perversion.

  1. 오오 오랜만이군.
    직장인으로써의 생활은 좀 힘든 모양이네...힘내게나 ㅠㅠ
    Wookie-+
    1. 뭐 인생이 다 힘들지 -_-ㅋㅋㅋ 넌 잘 있니 ㅋRandomgeist-
  2. 여기도(호주ㅋㅋ)비가 내리는구나. 얼마전에 이런 실험을 해봤어. 눈을 감고 한시간씩 기억을 뒤로 돌려보는거야 (실제 시간의 10배 속도로)그러다보면 점점 화질이 안좋아지고 하이라이트만 남게 되지. 영화를 만들자꾸나, 제목은 기억. 프롬 책은 읽어봤니?코알라-+
    1. 시험공부하느라 다른 책들은 당분간 아웃오브 마인드..
      음 아이디어는 좋은데 영화는 그럼 어떻게 구성이 되는거지? 내가 요새 생각해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음: 세상을 오로지 돈으로 계산해서 보여주는 것. 예를 들어 50만원짜리 카메라를 메고 가는 사람은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 대신 카메라 스트랩에 매달린 돈다발을 들고 가고 그걸로 사진을 찍고, 그 다음장면에는 20만원짜리 선글라스 대신에 돈다발로 눈을 가리고 걸어가고 (가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겠지), 그 다음장면에는 옷대신 돈으로 범벅을 하고.. 일자리에서는 상사가 매 시간 와서 시급을 주는거야 (예를 들어 12582원), 다음장면에서는 더욱 과장해서 매분 들어와서 분급을 주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돈을 갈아서 모래시계처럼 연속적으로 지급.. 물론 현실과 과장되고 비틀린 유머사이의 경계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늘리는게 영화적 성공을 좌지우지..
      Random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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